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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형이 끝나고 건조 초벌구이의 과정을  거치기 전에 모양을 내게 된다.

백토(?)를 바른 후에 원하는 무늬나 글자를 쓰면 된다.

하나의 흙 덩어리에서 쓸모있는   그릇이 되어간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었다.

모양이 갖추어진 그릇에 모양을 내는 것..
 생각 보다 쉽지는 않았다. 비어있다는 것은 그만큼 가능성을 말해 주는 것이지만, 그것을 채우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창조의 작업이    필요했다.


덕이가 만든 필통에 새긴 글은
'국시 당근 합격.  힘내라 힘' ㅋㅋ

덕이는 이번에 본과 4학년이 되었다.

전국의  본과 4학년들의 염원을 담아 필통을 만들었다. 의사가 되기 위해 꼭 한번은 거쳐야 하는 관문 ^^

우리에게 올 한해는 중요한 여러가지 일들로  바쁘게 지나갈 것 같다.







나의 라면 그릇에 덧칠을 해주는   덕이 ㅋㅋ

원래 내가 라면 그릇에 새기고 싶었던 글은....

'한 그릇의 라면이 되기 위해 550cc의 물은 그렇게 팔팔 끓었나 보다' 였다.

그러나 공간의 부족과 글자 크기의 제한에 의해 결국은...





'한 그릇의 라면이 된다는 것은...'

이제 라면을 먹을 때마다 미소짓지 않을까... ^^







나의 눈빛은 장인

나의 글씨는 초등학생..

결과는

 무지 무거운 라면그릇.. ㅋㅋ






매우 매우 뿌듯해하는 나.. ^^

사람들이 별로 없는 평일이어서 더 오븟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사진 왼쪽 끝에 보이는 것이 토련기 인데 흙 덩어리를 고압으로 압축해서 공기를 빼주는 것이라고 한다.  공기가 남아 있는 채로 구이를 하면 그릇이 깨진다고...





그날 찍은 사진중 제일
잘나온 사진이라고 생각함.

구도 색감 표정 굿~









그럴듯한 사진..

두 사람의 이니셜을 새겨 넣었다.








이제 긴 건조과정 (약 20일경)을 거친 후

초벌구이를 하고 유약을 바르고 재벌구이를 할 것이다.

3월 25일경 찾으러 다시 오라며...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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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굽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찾던 중에 마땅한 것이 없어  ceramist 로 쓰기로 했다.
(더 적당한 표현을 아는 분들은 필히 리플 달아주셈~)

바탕골 아트센터의 하이라이트!!
그냥 보고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들 모양을 선택하고 같이 돌아가는 물레위의 흙을 같이 세워간다.

  능동적인 참여의 기쁨이란.. 그리고 어느덧 사용이 가능한(?) 그릇의 모양으로 되어 갈 때의 뿌듯함과 기쁨은 남 다른 것 같다.

우선 흙의 느낌이 참 좋았다. 
 속이 꽉 차있으나 원하는 모양대로 될 수 있는 유연함이 좋았다.
  앞으로 어떤 모양이든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아 무언가 충만한 느낌을 같이 가지게 되는 것 같았다.

지금 보기에는 문방구에서 파는 찰흙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이제 성형과 건조 구이를 통해서 어엿한 청자가 될 것이다.  (이 흙은 청자토로서 흙속에 구리 성분이 뭐 산화되면서 어쩌고 .. 자세한 내용은 검색해 보시길 )

자연에서 얻은 흙을 그냥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하나하나  반죽하고 발로 밟고 했으나 요즘은 시대가 워낙 발달하여 토련기로 흙을 돌려 점토를 부드럽게 만든다고 한다.

흙은 만들어져 있는 상태였다.
힘을 조절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는데, 잘못하면 금세 빵꾸가 나게 된다. ^^

나는 면기 (일명 라면그릇)을 만들기로 했고 덕이는 필통을 만들기로 했다.




힘조절을 잘 해가면 그릇의 모양을 만든 다음에는 스폰지를 이용해서 모양중 거친 부분을 다듬어 간다.

질서를 갖추어가고 다듬어지며 균형이 맞추어 질때의 느낌은 참 멋지다.

아래 사진은 면기의 성형을 마친 상태 실을 이용해서 아래와 분리 시켜준다. (하트 모냥은 애교~)








사실 이프로그램의 이름은 '사랑과 영혼' 뭐 영화같은 끈적한 장면을 연출 하지는 않았으나 공동 작업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신기하고 새로운 경험이었던 것 같다.

(뭐, 사실.. 이 성형에 있어서는, 둘이 했다고 보긴 힘든 부분이 많다. 구지 말하자면 셋의 공동작업이라고 할까. ^^ 덕이 + 나 + 선생님 ㅋㅋ)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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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헤 ^^이해를 돕기 위해 아래 있는 01번 글을 먼저 읽으시기를..

참으로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1시간 반동안 뭘한담?
매서운 추위의 수준은 아니었으나 우리의 콧물을 흐르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무작정 걷기 시작했고 이것 저것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결국 자연이라는 선물을 다시 발견하며, 여행을 같이 하는 덕이와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시골길의 강아지와 쓰이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마을회관도 보았다. 뭐 이렇게 저렇게 따져보면 한 5km 이상 걸은 것 같다.

찍어 놓은 사진들을 보다가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생각이 났다.

뭐 좀 많이 엉뚱하더라도 오늘은 필 받아서 이러는 것이니 이해하시길.. ^^

봄이 오는 길목에서 들을 빼앗긴 것을 탄식해야 하는 시인의 마음.. 시간이 흐르면 봄은 오지만, 그러한 봄의 다가옴을 표현할 들이 없음에 아파하는 시인의 마음. (들을 빼앗겼다면 봄마져 빼앗긴 것이다!!!)  곧 3.1절도 다가오며, 일본 대사가 엉뚱하게 독도가 확실히 일본 땅이라고 주장해대는 오늘의 일 때문일까? 고등학교 수업시간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이렇게 시간은 흘러 흘러 11시가 되어 바탕골 예술원에 드디어 입성~~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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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탕골은 본향의 우리말이라고 하며, 풀어쓰면  '바탕이 되는 고을'이 된다고 한다.

대학로의 바탕골 소극장은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바탕골 소극장의 설립자 박의순씨가 '예술인과 일반인이 함께 하는 종합문화 공간'을 꿈꾸며 예술과 문화의 바탕을 만들어 가고자 양평군 강하면에 바탕골 예술원을 세웠다.
(그게 벌써 6년전 일이다.)


예술관 이름 ‘바탕골’은 박씨의 시댁, 경북 상주군 함창면 본향리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며느리의 끼를 알아보고 이해해준 시아버지와 광산 경영으로 모은 돈을 모두 쏟아 부은 남편에 대한 사랑을 담았다고 한다.
홍익대 미대를 나온 박씨는 한 인터뷰에서  “혼돈과 모험으로 젊은 시절을 보냈다”고 말했다 .
그녀는 “넘치는 끼를 다잡기 위해”수녀원에도 가보고 절에도 있어봤고, 홍익대 미대에 진학, 미술을 통해 자기를 찾았고 한다.

이러한 그의 30년 꿈과 노력의 결과물이 바탕골 예술원이다.


이곳에는  도자기 공방과 아트센터, 공예방, 아트숍, 소극장등을 갖춰 놓았고 식당 카페, 산책로 까지 갖추고 있었다. 뭐 이쯤되면 종합 문화 공간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엉뚱하고, 안어울리게 왠 예술원을 휴가기간에 가게 되었느냐... 이전에 정규가 다녀와서 좋은 소문을 너무 많이 내기에 발걸음을 향하게 되었다. 차로 타고 가면 그리 멀지 않은 곳이지만 더욱 운치있고 추억이 있는 여행으로 만들기 위해 기차를 타기로 했다. (경춘선 기차로 40분 가량)

서둘러 8시 기차를 타고 9시 30분경 바탕골 예술관에 도착! 그런데 아뿔사... 개관이 11시 부터라는 것이다. 산책로도 문이 잠겨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 운심리 이장님이 확성기로 틀어 놓은 뽕짝은 귓가를 맴돌고...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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