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원에서는 확실히 일상과는 다른 환경을 경험할 수 있다.
‘무자극’까지는 아니더라도 훨씬 적은 자극속에 생활 하게 된다. 하루정도 시간이 흐르면어느덧 이곳의 분위기와 침묵에 젖어든다.
60년 된 예수원이 가지고 있는 고요하고 성스러운 분위기, 절제되고 규칙적인 생활,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점차 자신도 침묵하게 되고,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들과 생각들이 잠잠해 지게 된다.
이런 상태가 되면 한가지에 집중하여 생각하는 것이 수월해지고, 생각과 하루일과속의 작은 발견도 크게 확대해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여기서부터가 중요한 것 같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지 마음이 정화되는 것이 아니다. 고요를 위한 침묵이나, 마음의 소리를 듣기 위한 침묵을 찾기 위해 그곳에 갔던 것이 아니다. 고요함 속에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집중하기 위함이었다.
이날 오후 예수원 내에 있는 도서실에서 책을 읽을때, 내 마음 속에 허락하셨던 따스함과 기쁨을 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과 따뜻함을 계속 유지하기는 어려웠다.
침묵을 유지하며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도 결국 일상에서 끊임없이 이어져야 하는 훈련인 것 같다. 사실 쉽게 얻을 수 있고 언제든지 만족할 수 있다면 소중함도 모를 것이다.
이곳이 좋다고 예수원에서 계속 생활할 수는 없다.
다시 병원과 교회의 많은 일들이 있는 일상으로 돌아 올 것을 생각해 보았다.
분주함 속에서 흘러갈 하루하루를 생각해 보며, 계획을 짜서 규칙적으로 지내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끊임없는 호출과 환자들의 필요, 교회의 행사들.
그러나 예수님을 보라 그분 만큼 세상이 필요로 한 분도 없었고, 세상의 필요에 의해 움직인 분은 없었다.
그럼에도 새벽 미명에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나아갔다. 이것은 세상의 필요에 앞서는 하나님과의 관계와 소명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속에서도 하나님과 깊은 만남을 가지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드리리라 약속하게 되었다.
수도원공동체 생활의 체험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공동체 생활을 맛보고 그것을 통해 평안함과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소망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만병통치 보다는 내가 가진 만병을 돌아보고 어떻게 치료해나갈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다.
p.s. 대천덕 신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이전에 방문해보지 않아 비교할 수는 없으나, 어디에도 큰 빈자리는 느껴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대천덕 신부님이 사람들을 세우고 정신을 전수하는 것을 잘 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이는 단순한 한 사람의 생각이나 꿈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공유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