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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정신과 관련된 작품들은‘봐야지 봐야지’하면서도 ‘미루고 또 미루게’된다.


뷰티플 마인드는

나중에 비디오로 빌려봤고,

사이보그라도 괜찮아도

극장에서 보지 못했다.

조재현이 주연했던

연극 에쿠우스도 마찬가지다.





 

루나틱이라는 창작 뮤지컬.

이야기는 여러번 들었지만, 그저 ‘정신과’에서 소재를 차용했을 뿐 깊이 있는 내용은 아니라는 생각에 별로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lunatic, -ical [lúːnatìk], a.

① 미친, 발광한, 정신 이상의(insane).

② (행동 따위가) 미치광이 같은, 어이없는(frantic, mad).


옛날에는 달의 정기가 정신이상을 일으킨다고 생각했다.


달의 정기가

정신이상을 일으키다니 ...

 

정말 어이없는 인과론이다.

 

그래도 일단 무언가에 원인이 있다고 말할 수 있으니 마음이 조금은 편했을 것이다.

 

또한 내가 조절할 수 없는 나와 상관없는 것에 원인이 있으니 어떤 환자에 대해서도 누구도 책임질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극은 처음부터 현실감을 잃지 못하게 하려는지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준다.

우리 사회에서 실제 있었던 일들.

‘미쳤다. 맛갔다’고 사람들이 표현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의 뉴스를 종합해서 보여준다.


편집된 뉴스를 보며 무거워지는 마음... 그리고 떠오르는 생각.

왜 그랬을까? 왜? 왜?


돈. 사랑. 가족의 해체

루나틱에서는 이러한 원인들로 인해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마지막 원인.

나는 ‘정상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당신의 그 고정된 생각.

사용자 삽입 이미지


코믹 창작 뮤지컬을 보며 진단과 역동의 정확성을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래도 이후에 나와 다른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어떤 행동을 마주칠 때, 그것에 어떤 원인이 있을까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면 위대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행동과 생각을 나만의 무대위에 올려 놓고 생각해 볼 수 있다면 그 또한 귀한 기회일 것이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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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 (혹은 버스) 바퀴의 쇠 부분이었다.

나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성스러움과 경건함은

어떠한 사연이나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경건을 향한 열망과, 기꺼이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에 의해 결정되는 것 같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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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원 ..

카테고리 없음 2006. 11. 7. 23:58

소리높여 아픔과 요구를 외치는 일상속에서 예수원 가던 그날을 되돌아본다.


어렵사리...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예수원,
막연한 기대를 가졌던 그날 아침.

 

그곳으로 가는 길은 오히려 나의 분주함과 우리 생활이 어딘가에 메어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덕이가 실습시험을 준비하던 중 뜻하지 않게 교수님의 설명을 듣는 상황이 되었다.

 

사실, 그 상황은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러나 내 마음속은 안타까움과 조바심,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무력감과 짜증으로 가득했다. 거기에 덕이와 길이 어긋나는 일까지 벌어졌다. ‘


결국, 청량리역 출발 20분전에 혜화역에서 출발했다. 

기대나 다짐이 자리잡을 마음의 공간은 전혀 없었다.

택시 속에서 이런 저런 상황을 예상하며 이런저런 대책을 생각해야 했다.

‘11시 기차를 놓치면 차를 몰고 가야 하는데,
스노우체인도 없고 길도 모르고 ...’

출발 3분전에 황급히 택시에서 내려 기차까지 계속 뛰었다.

다행히도, 발권과 탑승까지 막힘없이 진행되었고,
기차를 무사히 탈 수 있게 되었다.

기차를 타고 나니 마음이 얼마나 많이 변하게 되는지..ㅎㅎ

나의 마음이 얼마나 주변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지를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었다.


자극과 의무로부터 멀어지는 기차속에서

 

침묵, 그 얼마나 간절히 원하던 행동인가?

정신과 의사이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맡고 있는 직분 때문에 내가 원하지 않는 때에도 무언가를 말해야 할 때가 너무도 많았다. 또한 많은 자극들은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자극들은 항상 무언가를 하게 만들었고, 이에 적응된 나는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해 진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도 ‘내 환자들 인수인계는 제대로 해주고 온 것일까?, 약을 바꿔야 할 환자들은 없나?, 3일동안 임조장들하고 연락을 못해서 어쩌지?’ 등등 해야 할 것 같은 많은 일들과 걱정들이 집중하지 못하게 하며 나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작년 연말부터 사람들과 삶을 나눌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는 ‘분주함’이다.

분주함이 일상이 되어버린 요즈음에는 오히려 이것들을 내려놓는 다는 사실이 또 다른 불안을 일으켰다. ‘아, 침묵은 그냥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구나... 침묵은 적극적인 선택이구나’

 

 

침묵의 시작

여러 가지 마음의 소리들이 잦아들기 시작했던건 대천덕 신부님의 기념비를 본 후부터이다.

왜? 추모비 옆에는‘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레위기 말씀이 써 있다. 대천덕 신부님은 공동체, 성령님에 집중함과 동시에 30년 넘게 토지 정의 실현을 위한 입법청원을 하셨다고 한다. 내가 이곳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내 생활의 문제가 해결되고 마음이 고요해 지는 것?

깊은 영성을 추구하는 것은 고요해지고 조용해지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요함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이를 세상에 더 큰 소리로 외치기 위해서이다!

그때부터 눈 밟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내 마음안에서 허우적거리기를 그만두게 되었다. 사람들과 자연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침묵의 잔치는 시작되었다.

이곳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고 아무것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 epilogue

그곳에서 돌아온 후...

마음의 평안함과 고요함을 유지하는 것에 관심이 많아졌다.

내 생활속에 평안을 좌우하는 두가지 요소는 이렇다.


첫째는 관계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제대로 맺어져있을 때 나는 평안하다. 죄를 짓거나 하나님 싫어하시는 것을 알면서도 무언가 진행하면 평안이 여지없이 깨진다. 또한 이웃과의 관계, 특히 가까운 사람들 (가족&자매^^)과의 관계를 지켜가는 것이 평안함의 핵심인 것 같다. 관계가 틀어지면 마음이 불편하다. (당연..)


 

두 번째는 있어야 할 곳에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있어야 할 곳과 해야 할 일에 대한 왜곡된 인지도 있을 수 있고 자기만족의 함정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우리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고 목적을 가지고 지어진 존재이다. 당장 편해 보이고 좋아보이는 일일지라도 어긋난 일이면 금방 마음이 불편해 진다. (역시 당연..)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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